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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창조의 미학, 역사(歷史)를 짓는다-BT그룹 강범규 대표

김철중 | 기사입력 2023/10/27 [13:52]

<인터뷰>창조의 미학, 역사(歷史)를 짓는다-BT그룹 강범규 대표

김철중 | 입력 : 2023/10/27 [13:52]

 

 

▲ BT그룹 강병규CEO    

 

 <파워 인터뷰> 창조의 미학, 역사(歷史)를 짓는다-BT그룹 강범규 대표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인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더 듀마(Alexandre Dumas, 1802. 7.24.~1870.12.5.)는 “만남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듀마의 말처럼 ‘만남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비티그룹(BT Group) 강범규 대표와의 만남은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간직된 애환과 꿈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에게 묻고, 그에게 들었다.

 

  -다양한 이력이 흥미롭습니다. 지금 위치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할 필연적 과정이었을까요?

 (웃음) 글쎄요…그런 걸까요?…처음엔 취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조그만 미용학원을 하셨는데 거의 폐업 수준이었거든요. 당시, 평택이 ‘고용촉진지역’으로 선정이 됐고, 노동부 에서 회의를 하자고 해서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갔습니다. 그게 계기였죠. 6년 동안 공병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며 모은 1억 원으로 ‘직업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직업학교’가 잘 돼니까 건물주가 임대료에 욕심을 냈어요. 임대료에 시달릴 바에는 그냥 내 건물을 사서 이 자를 내자라는 심정으로 경매에 뛰어들었죠. 낙찰받은 건물을 직접 리모델링해 임대업과 함 께 학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실용음악 학원’을 경영했고, 요리에 관심이 있어 이탈리안 레 스토랑도 경영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런 이력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계기가 됐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네요. (웃음)

 

  -지금 BT그룹의 모태가 된 BT건설을 2012년에 세우셨죠?

 네, 그랬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요…낙찰받은 건물에 간판을 올리기도 전에 정신적 지주 셨던 아버님이 산행에서 돌아가셨어요. 1 년여를 방황했습니다. 간신히 마음을 잡고 사업에 전념하려는데 이번엔 민원에 시달렸습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났어요. 다 버리고 떠나자는 생 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이민을 가려고 했죠. 그 시기에 아내를 만났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됐습니다. 어차피 힘들 바엔 즐겁게 힘들 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떠올린 게 군인 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병부대에서 같이 복무한 동기‧후배들을 불러 모아 BT건설을 설립 했습니다. 군인정신으로 모두 함께 즐겁게 힘들고, 제대로 큰일을 해보자는 취지였죠.

 

  -어떻게 사업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이루 말로 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있었죠. 사업 초기엔 공사 수주 가 없으니까 도배⦁장판 기능사를 따서 제가 직접 현장에서 도배와 장판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제법 공사 수주가 되니 이번엔 건축주와의 분쟁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사기도 당하고, 소송도 당하고, 제가 소송을 하기도 하고 (웃음)…위기와 극복의 연속이었죠. 그렇게 지금까지 달려왔고,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어요. 그 동력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죠. 저를 믿고, 저와 함께해준 직원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BT건설’은 2017년, 회사 설립 5년 만에 시행사 ‘BT승원개발’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시행과 시공을 병행함으로써 도약에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 첫 사업이 바로 평택 도심지 중심에 세운 ‘비티 온유안’이다.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온유안 1차’에 이어 ‘온유안 2차’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직원들의 신뢰와 단결이 아닐까 합니다. 공병장교 출신들이라 자재비나 원가절감 에 있어서는 자신했습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어떤 현장이든 주어진 여건에서 해내고자 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작지만 단단하고 끈끈한 노력의 결실이 사업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만들었 다고 생각합니다. 운도 좀 따랐고요 (웃음)…사실 ‘온유안 2차’는 저희 BT건설의 사옥이 있던 곳입니다. 2018년 사옥을 직접 철거하고 ‘비티 온유안 2차’를 시행했죠. 적지 않은 사건, 사 고가 있었지만 결과가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공과 자신감이 토대가 되었을까요? 이번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현재 저희 비티그룹은 ‘오동나무길’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평 택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일명 삼리)가 포함된 평택동 76번지 일원 평택1구역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어두운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도시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이 사 업은 비단 저희 비티만의 사업이 아니라 평택 시민의 숙원사업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사업지로 굳이 성매매 집결지가 포함된 구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평택의 발전과 관련해서 평택역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평택역은 평택시의 중 심역이며, 경기도(수도권) 최남단에 위치해 경기 남부의 관문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지리 적인 위치와 교통 네트워크의 중심으로서, 평택역은 지역 사회와 다양한 문화, 삶의 형태가 교차하고 융합되는 장소로, 역 자체의 수요도 2005년 1호선 연장과 2009년 민자역사 완공을 거치면서 유동인구의 빠른 증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평택은 도시 내부의 변화와 불균형을 겪고 있습니다. 고덕신도시나 지제역을 중심으로 한 신도시의 발전과는 상대적으로 평택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지역은 소외되고 있 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편적인 예로, 지금 평택역 인근은 도시 계획의 미비와 시설물의 노후 화로 혼잡한 교통과 불편한 환경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성매매 집결지와 유해업소들의 난 무로 인해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발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그리시는 미래 평택역은 어떤 모습인가요?

 과거 평택역이 홀로 교통과 물류 이동 수단에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미래의 평택역은 사람 과 사람,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가교로써, 협력과 융합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또한 평택역 일대가 평택의 역사와 문화 를 간직한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야 합니다. 문화는 도시의 아이덴티티와 특색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평택역이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나면, 평택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더 널리 알리고, 도시의 매력을 높일 것입니다.

 

[강범규 대표는 신도시와 구도심을 하나의 생태계로 인식하는 발전을 추구한다. 이것이 강 대표가 성매매 집결지(일명 삼리)가 포함된 평택동 76번지 일원 ‘평택1구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 1906.7.8.~2005.1.25)은 "모든 건축은 피난처이며, 모든 위대한 건축은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고, 껴안고, 고양시키고, 자극하는 공간의 설계이다."라고 말했다. 존슨의 말처럼, BT그룹 강범규 대표가 짓는 건축물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고, 껴안고, 고양시키고, 자극하는 위대한 건축이 되길 기대한다.]

 

                                                             대담⦁김철중 기자 weekly56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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