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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재(河雲齋) 소고(小考)

-192 對 108이 주는 의미는…?-

김철중 | 기사입력 2024/04/22 [11:37]

하운재(河雲齋) 소고(小考)

-192 對 108이 주는 의미는…?-
김철중 | 입력 : 2024/04/22 [11:37]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여소야대(與小野大). 누군가에게는 충격이고, 누군가에게는 다행일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소야대는 1950년에 있었다. 1950년 집권당인 대한국민당은 신익희가 이끄는 민주국민당에게 제1당 자리를 내어주었다. 친이승만계 범여권 정당의 의석을 모두 합쳐도 총 210석 중 57석에 그치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이승만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관권선거를 동원해 1954년 총선과 1958년 총선에서 여유있게 과반수를 확보했다.

 

 이후, 1960년대~1980년대까진 여소야대의 정국이 나타나질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관권선거와 임기 2년짜리 유신정우회, 5공화국은 지역구 1()에게 전국구 의석의 2/3 배정이라는 선거법을 도입해 여소야대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198712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노태우 후보를 당선시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 해(1988)에 있었던 제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12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과반수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 되었다. 여소야대인 것이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1990년 보수정당 간의 연합을 명분으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선언, 개헌선을 초과하는 217석의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여소야대 정국이 깨진 것이다.

 

 이후로도 별반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되었더라도 이합집산과 의원 꿔주기, 정권의 압박으로 인해 총선의 결과하고는 상관없이 집권 여당은 늘 의석수 과반을 확보했다.

 

 다시 여소야대가 나타난 건 제20대 총선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 등으로 압승이 예상됐지만, 선거 결과 새누리당은 122석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23, 국민의당이 38, 정의당이 6석을 차지해 새누리당은 여소야대를 넘어 국회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기는 참패를 당하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택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재인 정부를 넘어 이제 다시 여소야대의 정국이 되었다. 야당 192. 무소불위의 입법 권력이 야당 손에 쥐어졌다. 물론 이는 국민의 선택이다. ‘국민은 늘 옳다라고 말하는 윤석열 정권의 앞날이 불안한 것은 나만의 우려가 아닐 것이다협치와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하운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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